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초능력 논문 게재 사건 (문단 편집) == 의의 == 우선 언급할 만한 것으로 위에서도 잠깐 지나갔던 '''[[재현성]] 문제'''를 들 수 있다. 2011년 이후 학계에서는 재현성에 대한 많은 자성이 일어났으며 재현성 연구를 하는 것에 대한 일체의 인센티브가 없다는 비판이 많이 이어졌다. 이 사건에서도 너도 나도 단순 재현성 연구를 해서 JPSP에 실어 보려고 애썼지만 결국 무위로 돌아가고 그것들을 정리한 메타분석 연구만이 게재에 성공했을 뿐이었다. 그런데 학계에서 출판에 실패했다는 얘기는 곧 그 학자의 커리어나 연구 업적에 대해서 아무런 영양가가 없다는 얘기랑 마찬가지다. 연구비는 연구비대로 들고 시간은 시간대로 드는데 [[대학교]]는 정교수직을 위해 [[테뉴어]]를 위해 연구자들을 한없이 몰아붙이는 상황이다. 이런 분위기에서 재현성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는 요원할 따름이다. 이 사건은 과연 "어떤 주제에서든 간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가 나온다면 '데이터가 말하는 것'을 따라가야 하는가?"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. 실제로 Wagenmakers 등이 지적한 바가 바로 그것이었다. 우선 학계에 어느 정도의 [[패러다임]]이라는 것은 존재하고 [[허경영|그런 거는 우리에게는 있을 리가 없다]]고 생각되어서 그 존재를 주장했다간 오히려 연구자가 [[욕]]을 먹는 경우도 존재한다. 그러나 (적어도 경험적으로 [[측정]] 가능한 주제이고 연구자가 [[연구부정행위]]를 하지 않은 이상) 무엇이 일단 통계적으로 충분히 유의미해 보인다면 어쩌면 그것에 기초하여 우리의 [[세계관]]을 뒤집을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. 여기서 학계의 많은 연구자들은 전자를 선택했고, 저널 편집위원들은 후자를 선택했다. 중요한 것은 'either-or'가 아니라 'both-and'일 수 있다는 것이다. 즉 둘 중에 어느 하나만을 취하고 다른 하나는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에 대한 두 가지 관점 사이에서 '''절묘한 줄타기'''를 할 필요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. 마지막으로 문제의 논문은 흔히 학술계량에서 활용되는 '''[[피인용수]]'''(number of citation)'''의 한계'''를 지적하는 사례로 활용되기도 한다. [[2016년]] [[5월]] [[구글 스콜라]] 기준으로 확인되는 피인용수는 대략 500회에 좀 못 미치는 수준이었는데 [[심리학]] 분야에서 이 정도는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분야의 상당한 학자들에게 읽히고 있다는 얘기다. 그러나 피인용수의 결정적 한계점은 그것이 정말로 지지와 옹호를 위해 인용한 것인지[* 즉 이 연구가 옳다는 가정을 토대로 자신의 연구를 진행했다는 의미인지], 아니면 동일한 저자가 자기인용을 한 것인지, 아니면 도리어 비판하기 위해서 인용했거나 심지어 [[반면교사]]로 삼기 위해서 인용한 것인지 등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. 적어도 학계에서 벰의 의견에 찬동하며 나타난 동료 연구자는 딱히 없는 것 같다. 그 말인 즉슨 [[부관참시|이 논문은 400~500회 가량 줄기차게 비판받고 있다는 말이다.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